1 00:00:00,362 --> 00:00:01,161 밥은 드셨어요? 2 00:00:01,606 --> 00:00:03,707 경희 씨는 막 뜬 자기 밥을 내려다보았습니다. 3 00:00:04,021 --> 00:00:06,798 점심 장사를 마치고도 서너 번 미뤘다가, 저녁 일곱 4 00:00:06,798 --> 00:00:08,480 시가 넘어서야 차린 밥상이었습니다. 5 00:00:08,910 --> 00:00:11,108 문 앞의 남자는 물만 한 잔 얻어 마실 수 있겠느냐고 6 00:00:11,108 --> 00:00:11,590 했습니다. 7 00:00:12,034 --> 00:00:14,078 짧은 검은 머리에서 빗물이 떨어졌습니다. 8 00:00:14,464 --> 00:00:17,588 남색 점퍼와 운동화를 신은, 골목에서 흔히 마주칠 법한 9 00:00:17,588 --> 00:00:18,586 한국 남자였습니다. 10 00:00:18,586 --> 00:00:19,791 아직 못 먹었습니다. 11 00:00:20,264 --> 00:00:22,564 경희 씨가 자기 앞의 밥상을 맞은편으로 밀었습니다. 12 00:00:22,564 --> 00:00:24,087 그럼 이거 드세요. 13 00:00:24,415 --> 00:00:25,634 아직 숟가락도 안 댔어요. 14 00:00:26,122 --> 00:00:27,486 그 남자는 예수님이었습니다. 15 00:00:27,872 --> 00:00:29,540 경희 씨는 그 사실을 몰랐습니다. 16 00:00:29,912 --> 00:00:31,980 비 맞고 서 있는 사람이 배고프다는 말만 들었을 17 00:00:31,980 --> 00:00:32,544 뿐이었습니다. 18 00:00:32,544 --> 00:00:34,024 사장님 식사 아닙니까? 19 00:00:34,106 --> 00:00:35,947 저야 여기서 밥하는 사람인데요. 20 00:00:36,073 --> 00:00:36,931 또 먹으면 되죠. 21 00:00:37,549 --> 00:00:39,722 경희 씨는 마른 수건을 꺼내 의자에 놓았습니다. 22 00:00:40,441 --> 00:00:43,609 예수님이 앉자 따뜻한 보리차를 따라주고, 반찬통에 있던 23 00:00:43,609 --> 00:00:45,171 달걀말이도 접시에 덜었습니다. 24 00:00:45,171 --> 00:00:47,576 많지는 않아도 따뜻할 때 드세요. 25 00:00:47,818 --> 00:00:49,800 예수님은 두 손으로 그릇을 당겼습니다. 26 00:00:49,800 --> 00:00:51,333 잘 먹겠습니다. 27 00:00:51,333 --> 00:00:54,033 경희 씨는 주방에 남은 밥을 긁어 작은 그릇에 28 00:00:54,033 --> 00:00:54,641 담았습니다. 29 00:00:55,329 --> 00:00:58,166 아까 자기 몫의 절반도 안 됐지만, 누룽지에 물을 부어 30 00:00:58,166 --> 00:01:00,528 함께 앉으니 그럭저럭 한 끼가 됐습니다. 31 00:01:00,988 --> 00:01:03,014 가게 안에 두 사람이 밥 먹는 소리가 났습니다. 32 00:01:03,520 --> 00:01:05,836 경희 씨가 벽시계 대신 맞은편을 보며 물었습니다. 33 00:01:05,930 --> 00:01:07,224 간은 괜찮아요? 34 00:01:07,379 --> 00:01:07,773 네. 35 00:01:08,248 --> 00:01:09,802 오랜만에 천천히 먹습니다. 36 00:01:09,907 --> 00:01:11,956 경희 씨도 숟가락을 조금 느리게 움직였습니다. 37 00:01:12,703 --> 00:01:15,805 예수님이 빈 물컵을 내려놓다가 계산대 아래의 그림을 38 00:01:15,805 --> 00:01:16,423 보았습니다. 39 00:01:17,026 --> 00:01:19,766 색연필로 그린 노란 가게와 세 사람이 있었습니다. 40 00:01:19,855 --> 00:01:21,373 아이가 그렸나 봅니다. 41 00:01:21,575 --> 00:01:22,337 손주요. 42 00:01:22,523 --> 00:01:23,173 저게 저래요. 43 00:01:23,342 --> 00:01:24,153 앞치마 입은 사람. 44 00:01:24,483 --> 00:01:27,264 그림 속 경희 씨는 자기 몸보다 큰 달걀말이를 들고 45 00:01:27,264 --> 00:01:28,075 있었습니다. 46 00:01:28,328 --> 00:01:30,240 경희 씨가 웃다가 서랍을 조금 닫았습니다. 47 00:01:30,923 --> 00:01:33,423 안에는 손잡이에 토끼가 붙은 작은 숟가락도 있었습니다. 48 00:01:33,963 --> 00:01:35,588 손주 지우가 안 온 지 넉 달이었습니다. 49 00:01:36,257 --> 00:01:38,785 딸 소연과도 그동안 전화가 뜸했습니다. 50 00:01:38,995 --> 00:01:41,662 경희 씨에게 맞은편 남자는 잠시 비를 피하러 들어온 51 00:01:41,662 --> 00:01:42,599 손님일 뿐이었습니다. 52 00:01:43,096 --> 00:01:45,452 자기 이야기를 듣고 있는 분이 예수님이시라는 생각은 53 00:01:45,590 --> 00:01:46,924 조금도 하지 못했습니다. 54 00:01:46,924 --> 00:01:49,931 딸은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혼자 아이를 돌보며 새 55 00:01:49,931 --> 00:01:50,959 일을 구하고 있었습니다. 56 00:01:51,211 --> 00:01:53,549 넉 달 전, 가게로 찾아와 이렇게 말했습니다. 57 00:01:53,608 --> 00:01:56,154 엄마, 나 며칠만 집에서 쉬면 안 될까? 58 00:01:56,987 --> 00:01:58,789 경희 씨는 설거지를 하면서 대답했습니다. 59 00:01:58,893 --> 00:02:01,365 쉬는 건 좋은데, 다음 일부터 정해야지. 60 00:02:01,632 --> 00:02:02,302 애도 있는데. 61 00:02:02,659 --> 00:02:04,849 딸이 듣고 싶었던 말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62 00:02:04,849 --> 00:02:05,350 나도 알아. 63 00:02:06,296 --> 00:02:08,000 그냥 오늘은 괜찮다고 좀 해주면 안 돼? 64 00:02:08,916 --> 00:02:11,216 경희 씨는 젖은 손을 닦으면서도 다음 말을 찾지 65 00:02:11,216 --> 00:02:11,838 못했습니다. 66 00:02:12,587 --> 00:02:15,024 그날 딸은 반찬을 담아주겠다는 말도 사양하고 67 00:02:15,024 --> 00:02:15,692 돌아갔습니다. 68 00:02:16,135 --> 00:02:19,302 그 뒤로 경희 씨는 몇 번이나 딸의 번호를 눌렀습니다. 69 00:02:19,821 --> 00:02:22,302 연결음이 나기 전에 끊은 날이 더 많았습니다. 70 00:02:22,602 --> 00:02:24,463 오늘도 쓰다 만 문자가 남아 있었습니다. 71 00:02:24,823 --> 00:02:25,763 새 일은 구했니. 72 00:02:26,464 --> 00:02:27,364 집세는 괜찮니. 73 00:02:27,364 --> 00:02:30,445 경희 씨는 그 두 문장을 지우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74 00:02:31,166 --> 00:02:33,247 예수님은 그림을 다시 서랍에 넣어주었습니다. 75 00:02:33,767 --> 00:02:35,628 아이가 달걀말이를 좋아하나 봅니다. 76 00:02:35,788 --> 00:02:36,288 예. 77 00:02:36,588 --> 00:02:37,588 파는 꼭 빼야 해요. 78 00:02:37,989 --> 00:02:39,481 조그만 것도 다 골라내요. 79 00:02:39,481 --> 00:02:41,323 경희 씨가 접시에 남은 파를 보았습니다. 80 00:02:41,864 --> 00:02:44,361 그러다 문 앞에 서 있던 남자에게 자기가 처음 했던 81 00:02:44,361 --> 00:02:45,342 말이 생각났습니다. 82 00:02:45,797 --> 00:02:46,864 밥은 드셨어요. 83 00:02:46,864 --> 00:02:49,996 모르는 사람에게는 그렇게 쉽게 물었는데, 딸에게는 자꾸 84 00:02:49,996 --> 00:02:51,043 다음 일을 물었습니다. 85 00:02:51,729 --> 00:02:54,025 경희 씨는 휴대전화를 뒤집어 놓았다가 다시 집어 86 00:02:54,025 --> 00:02:54,585 들었습니다. 87 00:02:55,134 --> 00:02:57,474 쓰다 만 두 문장을 지우고 짧게 적었습니다. 88 00:02:57,962 --> 00:02:59,237 소연아, 저녁 먹었니. 89 00:02:59,634 --> 00:03:01,107 엄마는 네 목소리가 듣고 싶다. 90 00:03:01,611 --> 00:03:04,058 한동안 화면 위에 머물던 손가락이 전송 버튼을 91 00:03:04,058 --> 00:03:04,665 눌렀습니다. 92 00:03:05,426 --> 00:03:07,325 예수님이 다 먹은 그릇을 포개 들었습니다. 93 00:03:07,448 --> 00:03:08,967 어디에 놓으면 될까요? 94 00:03:09,151 --> 00:03:10,153 거기 두세요. 95 00:03:10,717 --> 00:03:11,764 손님이 왜 그걸 해요. 96 00:03:12,541 --> 00:03:15,536 그분은 식탁에 떨어진 물기를 수건으로 닦고 그릇을 주방 97 00:03:15,536 --> 00:03:16,492 입구에 내려놓았습니다. 98 00:03:17,132 --> 00:03:19,610 경희 씨가 건네준 수건은 의자 등받이에 가지런히 99 00:03:19,610 --> 00:03:20,186 걸었습니다. 100 00:03:20,279 --> 00:03:22,224 오늘 밥을 내어주셔서 고맙습니다. 101 00:03:22,332 --> 00:03:23,546 밥 한 끼 가지고요. 102 00:03:23,791 --> 00:03:25,021 나중에 지나가다 또 오세요. 103 00:03:26,071 --> 00:03:28,200 예수님은 계산대의 가족 그림을 한 번 보고 문을 104 00:03:28,200 --> 00:03:28,776 열었습니다. 105 00:03:28,884 --> 00:03:31,649 다음 식사는 혼자 드시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106 00:03:32,274 --> 00:03:34,129 경희 씨는 그 말을 예의 바른 손님의 인사로 107 00:03:34,129 --> 00:03:34,735 들었습니다. 108 00:03:35,421 --> 00:03:37,899 그릇을 씻고 돌아왔을 때 휴대전화에는 아직 답이 109 00:03:37,899 --> 00:03:38,490 없었습니다. 110 00:03:39,085 --> 00:03:41,063 그렇다고 문자를 지우지는 않았습니다. 111 00:03:41,063 --> 00:03:43,440 같은 시각, 소연은 아들과 버스 정류장에 서 112 00:03:43,440 --> 00:03:43,998 있었습니다. 113 00:03:44,801 --> 00:03:47,236 새로 일하게 된 반찬가게에서 퇴근하는 길이었습니다. 114 00:03:47,866 --> 00:03:50,651 돌봄교실에서 데려온 지우는 졸린 눈으로 엄마의 가방을 115 00:03:50,651 --> 00:03:51,506 붙들고 있었습니다. 116 00:03:52,152 --> 00:03:54,227 휴대전화에는 어머니의 문자가 떠 있었습니다. 117 00:03:54,827 --> 00:03:56,699 소연은 읽고도 답을 쓰지 못했습니다. 118 00:03:57,173 --> 00:03:59,780 전화를 하면 또 잘 지내는 척부터 할 것 같았습니다. 119 00:04:00,223 --> 00:04:02,960 경희 씨는 손님에게 딸의 이름도, 어디에서 사는지도 120 00:04:02,960 --> 00:04:03,831 말하지 않았습니다. 121 00:04:04,165 --> 00:04:06,620 그런데 예수님은 소연이 서 있는 정류장으로 122 00:04:06,620 --> 00:04:07,366 걸어오셨습니다. 123 00:04:07,871 --> 00:04:09,795 그분이 노선도를 보고 있는 소연에게 물었습니다. 124 00:04:09,795 --> 00:04:12,293 혹시 근처 경희분식 아십니까? 125 00:04:12,798 --> 00:04:14,013 소연이 고개를 들었습니다. 126 00:04:14,644 --> 00:04:17,162 소연의 눈에도 그저 길에서 말을 건네온 평범한 127 00:04:17,162 --> 00:04:17,908 아저씨였습니다. 128 00:04:18,664 --> 00:04:21,088 예수님이 바로 앞에 서 계신다는 것은 전혀 알지 129 00:04:21,088 --> 00:04:21,693 못했습니다. 130 00:04:21,933 --> 00:04:23,090 저희 엄마 가게인데요. 131 00:04:23,090 --> 00:04:25,666 조금 전에 거기서 밥을 먹었습니다. 132 00:04:26,297 --> 00:04:27,997 어머님께 고마운 대접을 받았습니다. 133 00:04:28,361 --> 00:04:30,442 지우가 가방 뒤에서 얼굴을 내밀었습니다. 134 00:04:30,442 --> 00:04:32,892 우리 할머니 달걀말이도 드셨어요? 135 00:04:32,960 --> 00:04:33,752 네. 136 00:04:34,227 --> 00:04:35,051 아주 맛있더군요. 137 00:04:35,306 --> 00:04:36,823 지우가 조금 더 가까이 다가섰습니다. 138 00:04:36,823 --> 00:04:39,024 엄마 가게, 아직 열려 있었어요? 139 00:04:39,107 --> 00:04:39,602 네. 140 00:04:39,936 --> 00:04:43,075 제가 들어갈 때 혼자 식사하려던 참이셨습니다. 141 00:04:43,304 --> 00:04:44,598 소연이 시간을 보았습니다. 142 00:04:45,017 --> 00:04:47,056 어머니는 늘 바빠서 먹었다고만 했습니다. 143 00:04:47,793 --> 00:04:50,236 일곱 시가 넘도록 저녁을 못 먹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144 00:04:50,236 --> 00:04:50,879 못했습니다. 145 00:04:51,457 --> 00:04:52,735 예수님이 말을 이었습니다. 146 00:04:52,837 --> 00:04:56,304 물을 부탁드렸는데, 당신 밥을 저한테 내어주셨습니다. 147 00:04:56,962 --> 00:04:59,239 그래서 저는 따뜻한 밥 한 그릇을 다 먹었습니다. 148 00:04:59,801 --> 00:05:01,872 소연은 어머니가 하셨을 말을 떠올렸습니다. 149 00:05:02,434 --> 00:05:03,538 나는 또 먹으면 된다. 150 00:05:03,735 --> 00:05:04,648 냉장고에 다 있다. 151 00:05:04,829 --> 00:05:07,535 그 말 뒤에서 자기 몫은 늘 작아지던 사람. 152 00:05:07,922 --> 00:05:10,936 소연은 어머니에게 서운한 마음과, 어머니가 보고 싶은 153 00:05:10,936 --> 00:05:12,230 마음을 한꺼번에 느꼈습니다. 154 00:05:12,665 --> 00:05:13,626 지우가 물었습니다. 155 00:05:13,760 --> 00:05:16,212 엄마, 할머니는 밥 조금 먹었어? 156 00:05:16,805 --> 00:05:19,400 소연은 대답 대신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157 00:05:20,041 --> 00:05:22,636 경희 씨는 손을 앞치마에 문지르고 전화를 받았습니다. 158 00:05:22,690 --> 00:05:24,206 어, 소연아. 159 00:05:24,863 --> 00:05:27,268 전화기 너머에서 버스가 멈추는 소리가 났습니다. 160 00:05:27,814 --> 00:05:29,266 소연은 버스에 타지 않았습니다. 161 00:05:29,337 --> 00:05:31,820 엄마, 나 저녁 아직 안 먹었어. 162 00:05:31,891 --> 00:05:32,978 그러면 와. 163 00:05:33,397 --> 00:05:34,168 지우도 같이 있니? 164 00:05:34,936 --> 00:05:37,150 경희 씨가 냉장고 쪽으로 한 발 가다가 멈췄습니다. 165 00:05:37,902 --> 00:05:39,869 밥부터 하겠다고 전화를 끊으면 또 못 할 말이 166 00:05:39,869 --> 00:05:40,313 있었습니다. 167 00:05:40,313 --> 00:05:41,449 소연아. 168 00:05:41,868 --> 00:05:43,495 지난번에 네가 쉬고 싶다고 했을 때. 169 00:05:43,946 --> 00:05:45,620 딸은 가만히 듣고 있었습니다. 170 00:05:45,890 --> 00:05:47,523 엄마가 그냥 오라고 했어야 했는데. 171 00:05:47,897 --> 00:05:49,696 네가 얼마나 힘든지 물어보지도 않았네. 172 00:05:50,100 --> 00:05:50,580 미안하다. 173 00:05:51,029 --> 00:05:53,336 경희 씨는 자기도 걱정돼서 그랬다는 말을 붙이지 174 00:05:53,336 --> 00:05:53,876 않았습니다. 175 00:05:54,595 --> 00:05:56,228 소연의 목소리가 조금 작아졌습니다. 176 00:05:56,513 --> 00:05:57,846 나도 엄마 보고 싶었어. 177 00:05:57,846 --> 00:05:58,521 응. 178 00:05:59,045 --> 00:05:59,809 와서 밥 먹자. 179 00:06:00,498 --> 00:06:02,911 전화를 끊은 소연이 돌아보았을 때, 남자는 정류장 180 00:06:02,911 --> 00:06:04,544 끝에서 걸음을 옮기고 있었습니다. 181 00:06:04,574 --> 00:06:07,286 다음에 가게 오시면 제가 밥 한 끼 대접할게요! 182 00:06:07,840 --> 00:06:09,639 예수님이 돌아서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183 00:06:10,178 --> 00:06:12,695 소연은 그분을 어머니 가게에서 밥을 먹은 손님으로만 184 00:06:12,695 --> 00:06:13,369 기억했습니다. 185 00:06:13,789 --> 00:06:16,306 경희 씨는 쌀통에서 쌀을 퍼 압력솥에 안쳤습니다. 186 00:06:16,875 --> 00:06:19,827 기다리는 동안 달걀을 풀고, 도마 한쪽에 썰어두었던 187 00:06:19,827 --> 00:06:21,445 파를 다른 그릇으로 옮겼습니다. 188 00:06:21,985 --> 00:06:23,978 서랍 속 작은 숟가락도 다시 씻었습니다. 189 00:06:24,622 --> 00:06:26,765 손잡이를 닦는 손이 몇 번이나 멈췄습니다. 190 00:06:27,169 --> 00:06:29,536 문에 달린 종이 울리자 지우가 먼저 들어왔습니다. 191 00:06:29,536 --> 00:06:31,230 할머니, 배고파! 192 00:06:31,409 --> 00:06:32,713 경희 씨가 허리를 굽혔습니다. 193 00:06:32,983 --> 00:06:34,421 아이가 달려와 앞치마를 안았습니다. 194 00:06:34,421 --> 00:06:35,125 그래. 195 00:06:35,395 --> 00:06:36,549 오늘 파 하나도 안 넣었다. 196 00:06:37,148 --> 00:06:39,276 소연은 문 앞에서 젖은 우산을 접었습니다. 197 00:06:39,710 --> 00:06:42,078 경희 씨가 손을 내밀어 우산을 받아 옆에 세웠습니다. 198 00:06:42,078 --> 00:06:42,782 춥지? 199 00:06:42,872 --> 00:06:43,694 얼른 앉아. 200 00:06:43,694 --> 00:06:47,119 밥이 되는 동안 소연은 겉옷도 벗지 않고 어머니 옆에 201 00:06:47,119 --> 00:06:48,169 잠깐 서 있었습니다. 202 00:06:48,448 --> 00:06:50,560 경희 씨가 딸의 등을 한 번 쓸어주었습니다. 203 00:06:51,001 --> 00:06:53,099 그날 식탁에는 밥그릇 세 개가 놓였습니다. 204 00:06:53,496 --> 00:06:56,199 경희 씨가 자기 그릇의 밥을 지우에게 덜어주려 하자 205 00:06:56,507 --> 00:06:57,644 소연이 손을 막았습니다. 206 00:06:57,644 --> 00:06:58,709 엄마 것도 먹어. 207 00:06:59,076 --> 00:07:00,332 지우는 더 달라고 하면 돼. 208 00:07:00,847 --> 00:07:03,137 경희 씨가 자기 그릇을 다시 당겼습니다. 209 00:07:03,137 --> 00:07:05,744 밥을 먹다가 소연이 새로 시작한 일을 이야기했습니다. 210 00:07:06,319 --> 00:07:09,424 반찬가게 일이 아직 서툴고, 수요일에는 퇴근 시간이 211 00:07:09,424 --> 00:07:12,464 돌봄교실 문 닫는 시간보다 조금 늦는다고 했습니다. 212 00:07:12,993 --> 00:07:14,936 경희 씨는 이번에는 충고부터 하지 않았습니다. 213 00:07:15,155 --> 00:07:16,743 내가 수요일에 지우 데려올까? 214 00:07:17,241 --> 00:07:19,044 그날은 가게를 일찍 정리할 수 있어. 215 00:07:19,172 --> 00:07:20,575 매주는 힘들지 않아? 216 00:07:20,575 --> 00:07:21,770 힘든 주엔 미리 말할게. 217 00:07:22,517 --> 00:07:24,190 네가 정해준 시간에 맞춰 가면 되지? 218 00:07:24,847 --> 00:07:26,491 소연이 휴대전화 달력을 열었습니다. 219 00:07:26,879 --> 00:07:29,120 경희 씨도 계산대에서 볼펜을 가져왔습니다. 220 00:07:29,242 --> 00:07:32,561 그다음 수요일, 경희 씨는 약속한 시간에 돌봄교실 앞에 221 00:07:32,561 --> 00:07:33,272 서 있었습니다. 222 00:07:33,758 --> 00:07:35,878 지우가 친구들에게 할머니라고 소개했습니다. 223 00:07:36,212 --> 00:07:39,333 아이의 가방을 받아 든 경희 씨는 돌아오는 길에 파 224 00:07:39,333 --> 00:07:41,878 없는 달걀말이에 뭘 더 넣을지 함께 골랐습니다. 225 00:07:41,878 --> 00:07:44,267 그날부터 세 사람이 매일 같이 먹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226 00:07:44,860 --> 00:07:46,964 대신 못 오는 날에도 전화가 왔습니다. 227 00:07:47,671 --> 00:07:50,525 경희 씨는 딸의 하루를 끝까지 들었고, 소연은 힘들면 228 00:07:50,525 --> 00:07:51,573 힘들다고 말했습니다. 229 00:07:52,009 --> 00:07:55,177 며칠 뒤, 소연이 가게 일을 거들며 그날 정류장에서 230 00:07:55,177 --> 00:07:56,609 만난 남자 이야기를 했습니다. 231 00:07:56,746 --> 00:07:58,222 그분 덕분에 전화했어. 232 00:07:58,915 --> 00:08:00,419 엄마 밥을 대신 먹었다고 하시더라. 233 00:08:00,556 --> 00:08:01,689 남색 점퍼 입은 분? 234 00:08:01,755 --> 00:08:02,203 응. 235 00:08:02,639 --> 00:08:04,543 또 오시면 나도 밥 한 끼 사드려야겠다. 236 00:08:05,279 --> 00:08:07,382 경희 씨는 마른 수건을 접어 서랍에 넣었습니다. 237 00:08:07,690 --> 00:08:10,022 그분의 이름을 물어보지 않은 것이 그제야 생각났습니다. 238 00:08:10,658 --> 00:08:13,104 둘은 끝내 그분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239 00:08:13,469 --> 00:08:16,694 한 끼를 내어준 경희 씨에게 예수님은, 다시 누군가와 240 00:08:16,694 --> 00:08:18,598 마주 앉아 먹는 저녁을 돌려주셨습니다. 241 00:08:18,706 --> 00:08:21,737 딸에게 말을 건넬 용기와, 그 말을 기다리고 있던 딸이 242 00:08:21,888 --> 00:08:23,178 서로 닿도록 해주셨습니다. 243 00:08:23,443 --> 00:08:25,932 가게 밖에서 예수님이 잠시 걸음을 멈추셨습니다. 244 00:08:26,240 --> 00:08:28,708 유리창 안으로 지우가 달걀말이를 집다가 떨어뜨리는 245 00:08:28,708 --> 00:08:29,556 모습이 보였습니다. 246 00:08:29,864 --> 00:08:32,367 경희 씨가 웃으며 새 조각을 접시에 놓아주었습니다. 247 00:08:33,074 --> 00:08:35,743 그분은 세 사람이 앉은 식탁을 바라보고 다시 골목을 248 00:08:35,743 --> 00:08:36,519 걸어가셨습니다. 249 00:08:37,084 --> 00:08:38,831 경희 씨는 창밖을 보지 못했습니다. 250 00:08:39,267 --> 00:08:41,984 딸이 자기 그릇에 반찬을 놓아주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251 00:08:42,313 --> 00:08:43,701 이야기, 마음에 드셨나요? 252 00:08:44,191 --> 00:08:45,178 구독으로 함께해 주세요. 253 00:08:45,459 --> 00:08:47,007 여러분의 사연도 댓글로 남겨주세요. 254 00:08:47,273 --> 00:08:48,636 영상으로 만들어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