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절을 찾아온 이유
순자“스님, 자식 걱정을 좀 안 하고 살고 싶어요. 그런데 그러면 제가 나쁜 엄마가 되는 것 같아요.”
순자 씨는 그 말을 하려고 아침부터 동네 절을 찾아왔습니다. 법당 앞을 두 번이나 서성이다 도윤 스님과 마주 앉았습니다.
도윤 스님“요즘 무슨 일이 있으셨습니까?”
순자 씨가 가방에서 휴대전화를 꺼냈습니다. 아들에게 보낸 메시지가 화면을 채우고 있었습니다.
밥은 먹었니. 오늘 연락 온 데는 없고. 전화 한번 해라.
순자“아들이 다니던 회사가 문을 닫았어요. 넉 달째 일자리를 구하는데 잘 안 되나 봐요.”
도윤 스님은 휴대전화를 내려다보다 순자 씨에게 시선을 돌렸습니다.
도윤 스님“아드님도 힘드시겠지만, 어머니도 마음을 많이 쓰셨겠어요.”
순자 씨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순자“아침에 눈뜨면 그 생각부터 나요. 밤에는 혹시 연락이 왔을까 봐 전화기를 머리맡에 두고요. 애가 서른넷인데, 저는 아직도 혼자 길에 내놓은 것 같아요.”
걱정 속에 섞인 말
도윤 스님“아드님과 통화하시면 어떤 말씀을 하십니까?”
순자“좋은 소식 없느냐고 묻죠. 어디든 빨리 들어가야 하지 않겠느냐고도 하고. 다 걱정돼서 하는 말이에요.”
순자 씨는 손가락으로 가방 모서리를 문질렀습니다.
순자“며칠 전에는 애가 그러더라고요. 엄마, 나도 매일 알아보고 있으니까 그만 좀 물어보라고.”
그날 순자 씨는 서운해서 전화를 먼저 끊었습니다. 그러고는 저녁을 먹지 못했습니다.
순자“저는 애 편인데, 애는 제가 부담스러운가 봐요.”
스님은 잠시 기다렸다 물었습니다.
도윤 스님“아드님이 아직 일자리를 구하지 못했다는 사실 다음에, 어머니 마음에는 어떤 말이 따라옵니까?”
순자 씨가 눈을 들었습니다.
순자“무슨 말이요?”
도윤 스님“그 소식을 듣고 혼자 계실 때, 자신에게 하시는 말씀이요.”
순자 씨는 한참 생각했습니다.
순자“이러다 영영 자리 못 잡으면 어떡하나. 내가 좀 더 잘 가르쳤어야 했나. 다른 집 애들은 다 잘 사는데…….”
마지막 말은 작아졌습니다.
순자“애가 힘든 것도 속상한데, 제가 엄마 노릇을 잘못한 것 같아요.”
아픈 마음을 더 아프게 하는 것
도윤 스님이 말했습니다.
도윤 스님“불교 경전에 두 화살의 비유가 나옵니다. 몸에 아픔이 생겼을 때 마음의 괴로움까지 더해지는 모습을, 화살을 맞은 자리에 다시 화살을 맞는 것에 비유하지요.”
순자 씨가 가만히 들었습니다.
도윤 스님“그 비유를 오늘 어머니의 마음에 빌려서 살펴봅시다. 아드님이 일자리를 잃은 어려움은 실제로 있습니다. 그런데 그 위에, 이 아이는 앞으로도 안 될 거야, 나는 실패한 엄마야 하는 결론까지 얹고 계신 건 아닐까요.”
순자“그럼 제가 괜히 걱정한다는 말씀이세요?”
도윤 스님“아닙니다. 어려움도 걱정도 실제이지요. 다만 아직 알 수 없는 앞날까지 나쁜 쪽으로 확정하면, 오늘 감당할 몫보다 마음의 짐이 훨씬 커집니다.”
순자 씨는 휴대전화 화면을 껐습니다.
순자“제가 애한테 자꾸 다그치는 것도 그것 때문일까요?”
도윤 스님“그럴 수 있겠지요. 지금 도와줄 일을 찾는 것과, 두려워서 같은 답을 거듭 확인하는 것은 다릅니다. 다음에 전화를 걸기 전에 한번 살펴보세요. 지금 아이에게 필요한 것을 물으려는지, 내 불안을 급히 잠재우려는지.”
순자 씨는 어젯밤 보냈다 지운 메시지를 떠올렸습니다. 아들이 이미 답했던 질문이었습니다.
내려놓으면 누가 돌봐주나요
순자“그런데 스님, 제가 마음을 놓으면 누가 애를 챙겨줘요? 부모까지 그냥 두면 정말 혼자가 되잖아요.”
도윤 스님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도윤 스님“마음을 놓는다는 말을, 아이에게서 돌아서라는 말처럼 들으셨군요.”
순자“네. 저는 그게 안 돼요.”
도윤 스님“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은 잘 간직하셔야지요. 우리가 살펴볼 것은, 그 사랑에 붙어 있는 조급함입니다.”
스님은 순자 씨가 놓아둔 전화기를 가리켰습니다.
도윤 스님“어머니가 오늘 전화를 걸어 아이 말을 들어줄 수는 있습니다. 형편이 허락하면 반찬을 나눠줄 수도 있지요. 하지만 어느 회사에서 언제 연락이 올지까지 어머니가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
순자 씨가 천천히 숨을 내쉬었습니다.
순자“그걸 어떻게 기다려요. 잘될 거라는 말이라도 듣고 싶은데.”
도윤 스님“저도 언제 잘될 거라고 약속드릴 수는 없습니다. 다만 아직 정해지지 않은 결과를 오늘 꼭 받아내려는 마음은 잠시 쉬게 할 수 있겠지요.”
순자“그래도 저는 계속 불안할 텐데요.”
도윤 스님“그럴 때마다 불안하구나 하고 알아차리세요. 걱정이 다시 생겼다고 자신을 꾸짖지는 마시고요. 그다음에 오늘 할 수 있는 일을 하나 고르는 겁니다.”
아들이 들어도 좋은 말
도윤 스님이 물었습니다.
도윤 스님“오늘 아드님에게 가장 해주고 싶은 말씀이 무엇입니까? 취업 얘기를 잠깐 빼고 생각해보세요.”
순자 씨가 쉽게 대답하지 못했습니다. 무엇을 먹었는지, 어디에 지원했는지, 통장에는 얼마가 남았는지. 묻고 싶은 것은 많은데 해주고 싶은 말은 바로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조금 뒤 순자 씨가 말했습니다.
순자“너무 기죽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도윤 스님“왜요?”
순자“애가 얼마나 성실한데요. 비 오는 날에도 지각할까 봐 한 시간씩 먼저 나가던 애예요. 자기가 못나서 이렇게 된 줄 알까 봐…….”
순자 씨의 목소리가 잠겼습니다.
스님이 조용히 물었습니다.
도윤 스님“그 말씀은 아드님에게 해보셨습니까?”
순자 씨가 고개를 저었습니다.
순자“해이해질까 봐요. 괜찮다고 하면 그냥 주저앉을까 봐.”
도윤 스님“잘되기를 바라는 마음과, 지금 힘든 아이를 아껴주는 마음은 함께할 수 있습니다. 노력할 힘이 필요하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결과 하나로 그 사람 전체를 판단하지 않는 것이지요.”
순자 씨는 입을 열었다가 다물었습니다. 자신은 아들이 기죽지 않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통화할 때마다 아직 부족한 것부터 꺼냈습니다.
순자“제가 아껴주는 마음은 제대로 말을 안 했네요.”
어머니도 그 안에 있습니다
순자 씨가 눈가를 닦았습니다.
순자“이렇게 말하고 보니 더 미안해요. 애가 힘들 때 엄마라는 사람이…….”
도윤 스님“순자 씨.”
도윤 스님이 이름을 불렀습니다.
도윤 스님“지금도 잘못한 엄마라는 말부터 하고 계시네요.”
순자 씨의 손이 멈췄습니다.
도윤 스님“아드님에게 일자리 하나로 너 자신을 나쁘게 보지 말라고 해주고 싶으셨지요. 어머니도 오늘 서툴렀던 말 몇 마디로 살아오신 날들을 모두 나쁘게 보지는 마세요.”
창밖에서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순자 씨는 마루 끝을 바라보았습니다.
도윤 스님“불교에서 자애의 마음은 여러 존재의 안녕을 넓게 바라는 마음입니다. 우리도 그 마음을 연습할 때, 가까운 사람을 향하던 따뜻함을 조금씩 넓혀볼 수 있겠지요. 어머니 자신도 미워할 대상으로 남겨두지 마시고요.”
순자 씨가 작게 물었습니다.
순자“애는 그렇게 힘든데, 제가 편해도 될까요?”
도윤 스님“어머니가 밥 한 끼 편히 드신다고 아드님이 덜 소중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 말을 듣자 순자 씨의 눈물이 흘렀습니다. 아들이 힘들다는 소식을 들은 뒤로, 친구와 웃고 돌아온 날이면 괜히 미안했습니다. 맛있는 것을 먹다가도 젓가락을 놓았습니다.
자신까지 괴로워해야 아들 곁에 있는 것 같았습니다.
순자“저는 제가 웃으면 안 되는 줄 알았어요.”
스님은 휴지 상자를 가까이 놓아주었습니다. 순자 씨가 말을 이을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순자“애를 두고 저만 잘 사는 것 같아서요.”
도윤 스님“많이 애쓰셨습니다. 이제는 어머니 마음도 돌보면서 아이 곁에 있어보세요. 사랑을 꼭 괴로움으로만 표현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오늘 할 수 있는 일
비가 잦아들자 순자 씨가 가방을 챙겼습니다.
순자“집에 가면 또 전화기부터 볼 것 같아요.”
도윤 스님“그럴 수 있지요. 오늘은 보시더라도 바로 전화하지 말고, 잠깐 멈춰보세요.”
스님은 순자 씨와 함께 숨을 천천히 들이쉬고 내쉬었습니다. 어깨에 들어갔던 힘이 조금 빠졌습니다.
도윤 스님“그리고 무엇을 전할지 골라보는 겁니다. 답을 재촉하는 질문 대신, 아까 여기서 하셨던 말씀을 전해도 좋겠지요.”
순자“너 성실한 거 엄마가 안다고요?”
도윤 스님“네. 도움도 먼저 물어보시고요. 지금 들어주면 좋겠는지, 함께 알아보면 좋겠는지.”
순자 씨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순자“오늘 제가 할 수 있는 건 거기까지겠네요.”
도윤 스님“그것도 작은 일이 아닙니다.”
신발을 신던 순자 씨가 돌아보았습니다.
순자“스님, 또 마음이 복잡해지면 와도 되죠?”
도윤 스님“그럼요. 다음에는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도 들려주세요.”
달라진 전화
집에 돌아온 순자 씨는 아들에게 메시지를 썼습니다.
순자“엄마가 걱정돼서 같은 걸 자꾸 물었지. 부담 줘서 미안해. 네가 성실하게 애쓰는 건 엄마가 알아. 지금 도움이 필요한 게 있으면 말해줘.”
보내고 나서도 손은 전화기를 놓지 못했습니다. 곧장 답이 오지는 않았습니다.
혹시 서운해서 안 읽나. 무슨 일이 생겼나.
익숙한 생각이 올라왔습니다. 순자 씨는 입 밖으로 작게 말했습니다.
순자“내가 또 불안하구나.”
창문을 열었습니다. 비가 그친 골목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났습니다. 순자 씨는 저녁밥을 안치고 아들에게 줄 반찬은 내일 필요한지 물어보기로 했습니다.
밥을 먹고 있을 때 전화가 울렸습니다.
아들“엄마.”
순자 씨는 좋은 소식이 있느냐는 말을 삼켰습니다.
순자“응. 오늘 어땠어?”
아들이 잠깐 뜸을 들였습니다.
아들“별로였어. 면접 본 데서 또 안 됐대.”
순자 씨의 가슴이 내려앉았습니다. 어디가 부족했느냐고 묻고 싶었습니다. 이번에는 아들의 다음 말을 기다렸습니다.
아들“좀 창피해서 말을 못 했어.”
순자“그랬구나. 속상했겠다.”
전화기 너머가 조용해졌습니다. 한참 뒤 아들이 말했습니다.
아들“오늘은 그냥 얘기 좀 해도 돼? 어디 지원할지는 내일 생각하고.”
순자 씨는 수저를 내려놓았습니다.
순자“그래. 엄마 듣고 있어.”
걱정이 남아 있어도
아들의 취업은 그날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순자 씨도 다음 날 아침 눈을 뜨자 다시 아들 생각이 났습니다.
하지만 전처럼 하루를 전부 걱정에 내주지는 않았습니다. 물을 끓이고 아침을 먹었습니다. 산책하자는 친구의 전화에도 이번에는 나가겠다고 했습니다.
며칠 뒤 아들이 집에 들렀습니다. 둘은 냉장고를 열어 반찬을 골랐습니다. 순자 씨는 빈 통을 건네며 물었습니다.
순자“얼마나 가져갈래?”
아들“이만큼이면 돼. 엄마 것도 남겨놔.”
순자 씨는 남은 반찬을 작은 그릇에 담았습니다. 아들이 밥솥을 열며 말했습니다.
아들“엄마, 우리 지금 같이 먹고 갈까?”
순자“그러자.”
순자 씨가 수저 두 벌을 꺼냈습니다. 식탁에 앉은 아들이 반찬을 맛보다 조금 짜다며 웃었습니다. 순자 씨도 웃으며 물컵을 밀어주었습니다.
전화기를 보느라 식어버리던 밥이, 그날은 아직 따뜻했습니다.
짧은 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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