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RACLE ARCHIVE← 불교 이야기
불교이야기 · 창작 롱폼

편지 한 장을 부탁받은 지안 스님이 반년 동안 한 일

편지 한 장을 부탁한 어머니에게, 지안 스님은 반년 가까이 글을 가르쳐주었습니다. 딸에게 처음 전한 어머니의 손글씨에 관한 따뜻한 창작 일화입니다.

완성 영상

7분 41초 · 한국어 내레이션 · 인물별 색상 자막 · 소리는 플레이어에서 켤 수 있습니다.

썸네일

편지 한 장을 부탁받은 지안 스님이 반년 동안 한 일 썸네일

이미지를 누르면 원본 크기로 열거나 저장할 수 있습니다.

3줄 요약

  1. 글을 배우지 못한 영순 씨가 딸에게 보낼 편지를 부탁하자, 지안 스님은 먼저 편지를 써준 뒤 영순 씨가 원하던 글공부를 곁에서 돕기 시작한다.
  2. 틀리는 것이 부끄러워 그만두려던 영순 씨에게 스님은 배움을 강요하지 않고 수업의 양과 속도를 맞춰주며, 반년 가까이 같은 자리에서 글자를 함께 익힌다.
  3. 영순 씨가 직접 쓴 네 줄의 편지는 딸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고, 모녀의 웃음을 지켜본 지안 스님은 다음 답장도 어머니 스스로 읽을 수 있도록 배움을 이어간다.

대본 전문

현대 동네 절을 배경으로 한 창작 일화. 지안 스님과 모녀는 가상 인물이며 실제 인물의 행적, 실화 제보, 경전 인용으로 주장하지 않는다.

편지 한 장

김영순“지안 스님, 제 딸한테 편지 한 장만 써주실래요?”

김영순 씨가 가방에서 봉투를 꺼냈습니다. 모서리가 조금 구겨진 흰 봉투였습니다.

동네 절의 지안 스님은 찻잔을 옆으로 밀고 종이를 폈습니다.

지안 스님“뭐라고 전해드릴까요?”

김영순“가게 안 된다고 끼니 거르지 말라고요. 엄마는 잘 있으니까 걱정 말고.”

스님이 적는 동안 영순 씨는 입술을 움직였습니다. 조금 전에 자기가 한 말을 잊어버리지 않으려는 것 같았습니다.

지안 스님“또 하실 말씀은요?”

한참 뒤 영순 씨가 말했습니다.

김영순“나는 네가 내 딸이라서 참 좋다. 그것도 써주세요.”

스님은 말없이 그 문장을 아래에 적었습니다.

엄마가 보낸 말

영순 씨의 딸 수진은 다른 도시에서 작은 미용실을 했습니다. 요즘 손님이 줄어 늦게까지 문을 열어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전화는 자주 했습니다. 하지만 마음먹은 말은 잘 나오지 않았습니다. 딸이 괜찮다고 하면 영순 씨도 괜찮다고 했고, 손님이 왔다고 하면 얼른 끊으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딸이 혼자 있을 때 꺼내 읽을 편지를 보내고 싶었습니다.

영순 씨는 학교에 다니지 못했습니다. 어릴 때 동생들을 돌봤고, 조금 커서는 남의 집 일을 했습니다. 딸은 어머니가 글을 읽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집으로 온 중요한 우편물은 사진을 받아 읽어주곤 했습니다.

다만 딸에게 보낼 편지까지 딸에게 부탁할 수는 없었습니다.

지안 스님은 다 쓴 편지를 천천히 읽어주었습니다. 영순 씨는 두 손을 무릎에 올려놓고 들었습니다.

김영순“네. 딱 그 말이에요.”

그러다 종이 아래쪽을 가리켰습니다.

김영순“스님, 여기 수진이가 어디 있어요?”

스님이 딸의 이름 아래에 손가락을 놓았습니다. 영순 씨는 그 세 글자를 오래 보았습니다.

김영순“내가 평생 부른 이름인데, 써놓으면 못 알아보네요.”

이름부터

스님은 편지를 접어 봉투에 넣고 딸의 주소까지 적어주었습니다. 그리고 남은 종이 한 장에 크게 썼습니다.

수진아.

지안 스님“이름부터 한번 써보실래요?”

영순 씨가 손을 뒤로 뺐습니다.

김영순“아이고, 저는 못 해요.”

지안 스님“오늘 다 배우자는 건 아니고요. 원하시면 제가 옆에서 도와드릴게요.”

영순 씨는 잠시 망설이다 연필을 잡았습니다. 손가락에 힘이 잔뜩 들어갔습니다. 첫 글자가 종이 반을 차지했습니다. 뒤의 글자는 쓸 자리가 모자랐습니다.

김영순“거봐요. 종이만 버렸네.”

스님은 새 종이를 버리지도, 서둘러 덮지도 않았습니다. 그 아래에 손가락으로 자리를 짚었습니다.

지안 스님“이번에는 여기서 시작해볼까요?”

두 번째 이름은 한 줄 안에 들어갔습니다. 영순 씨는 그 종이도 봉투와 함께 가방에 넣었습니다.

문 앞에서 신발을 신던 영순 씨가 돌아봤습니다.

김영순“스님은 다음 주에도 계세요?”

지안 스님“수요일 오후에는 있습니다.”

김영순“그럼 그때 조금만 더 가르쳐주세요.”

수요일 오후

다음 수요일, 찻상 한쪽에 공책과 굵은 연필이 놓여 있었습니다. 영순 씨가 손에 힘을 너무 주던 걸 보고 스님이 준비한 것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일주일에 두 번, 삼십 분씩 만나기로 했습니다. 절 일이 겹치는 날은 미리 시간을 바꿨습니다. 스님은 일정을 적는 수첩에 영순 씨와 약속한 시간도 적었습니다.

처음에는 자기 이름과 딸의 이름을 썼습니다. 그다음에는 자음과 모음을 익혔습니다. 받침이 붙으면 앞에서 읽었던 글자도 다시 헷갈렸습니다.

영순 씨가 같은 것을 물어도 스님은 공책을 앞으로 당겨 다시 써주었습니다. 답답해하는 영순 씨를 두고 먼저 다음 장으로 넘어가지 않았습니다.

한 달쯤 지나 딸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전에 스님이 써준 편지를 잘 받았다고 했습니다.

수진“엄마, 그 말 전화로도 좀 해주지.”

영순 씨가 웃었습니다.

김영순“읽었으면 됐지.”

글을 배우기 시작했다는 말은 아직 하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자기 손으로 써서 보내고 싶었습니다.

오지 않은 날

두 달째 되던 주에 영순 씨가 수업에 오지 않았습니다. 다음 시간에도 못 가겠다는 전화가 왔습니다.

지안 스님이 물었습니다.

지안 스님“시간이 안 맞으세요? 다른 날로 바꿔도 됩니다.”

김영순“아니요. 스님만 고생시키는 것 같아서요.”

영순 씨는 전날 밤에 있었던 일을 이야기했습니다. 딸의 이름을 보지 않고 써보려다가 또 틀렸습니다. 앞장을 넘겨보고 고쳐도 다음 줄에서 같은 글자가 틀렸습니다.

김영순“젊을 때 못 배운 걸 이제 와서 뭘 하겠어요. 편지는 그냥 또 부탁드리면 되지.”

스님은 잠시 듣고 있다가 말했습니다.

지안 스님“편지는 언제든 써드릴게요. 공부를 그만하셔도요.”

영순 씨는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지안 스님“그런데 정말 그만하고 싶으신 건지, 자꾸 틀려서 속상하신 건지 여쭤봐도 될까요?”

수화기에서 작게 숨을 내쉬는 소리가 났습니다.

김영순“속상하죠. 나도 내 딸 이름쯤은 쓰고 싶죠.”

지안 스님“그럼 다음에는 새 글자 안 배우고, 그 이름만 같이 써요.”

지우지 않은 첫 장

영순 씨는 다음 수요일에 공책을 들고 왔습니다. 지안 스님은 새 장을 펴는 대신 맨 앞장을 펼쳤습니다. 첫날 써놓은 커다란 이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옆에 오늘 날짜를 적고 연필을 건넸습니다. 영순 씨가 천천히 딸의 이름을 썼습니다. 한 글자에서 멈추자 스님이 작은 종이에 그 부분만 보여주었습니다.

다 쓰고 나서 두 사람은 처음 쓴 이름과 나란히 놓고 보았습니다.

김영순“이건 제가 쓴 것 같지도 않네요.”

영순 씨가 첫날 글씨를 보고 웃었습니다.

그날은 세 줄만 쓰고 공책을 덮었습니다. 그 뒤로 스님은 집에서 할 공부도 하루 한 줄씩만 정해주었습니다. 틀린 글자가 있으면 그 옆에 바른 글자를 써서 비교했습니다. 공책 한 장 전체를 다시 쓰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날이 더워졌다가, 저녁 바람이 선선해졌습니다. 영순 씨는 장을 보다가 자기가 배운 글자를 만나면 다음 수업에서 이야기했습니다.

김영순“스님, 오늘 간판에서 수 자를 찾았어요.”

스님은 다음 글자를 쓰려던 연필을 내려놓고 어디에서 봤는지 물었습니다. 그날 영순 씨는 글씨보다 이야기를 더 많이 하고 갔습니다.

엄마 글씨

반년 가까이 지났을 때, 영순 씨가 먼저 말했습니다.

김영순“이제 편지 한번 써볼래요.”

스님은 처음 부탁받았던 편지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영순 씨가 하고 싶은 말을 짧게 나눠 함께 연습했습니다. 혼자 읽고 쓰기 어려운 글자는 공책에서 찾아보았습니다.

짧은 편지 한 장을 쓰는 데 며칠이 걸렸습니다. 영순 씨는 잘못 쓴 글자 위에 선을 긋고 옆에 다시 썼습니다. 마지막 줄의 ‘엄마가’는 공책을 보지 않고 썼습니다.

수진아. 밥 잘 챙겨 먹어라. 나는 네가 내 딸이라서 참 좋다. 엄마가.

지안 스님은 편지를 받아 들고 손가락으로 짚으며 함께 읽었습니다. 영순 씨는 자기가 쓴 글자에서 눈을 떼지 않았습니다.

김영순“틀린 데 있어요?”

지안 스님“무슨 말씀인지 잘 읽힙니다.”

김영순“봉투는 아직 스님이 써주세요. 주소는 너무 길어요.”

스님이 웃으며 봉투를 가져왔습니다. 영순 씨는 편지를 접으려다가 손을 멈췄습니다.

김영순“잠깐만요. 한 번만 더 읽어볼게요.”

딸이 가져온 봉투

편지를 보낸 지 며칠 뒤, 가게 문을 닫을 시간에 딸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수진“엄마. 이거 엄마가 쓴 거야?”

김영순“응. 지안 스님한테 배웠어.”

전화기 너머가 조용해졌습니다. 영순 씨가 먼저 물었습니다.

김영순“왜, 못 알아보겠어?”

수진“아니. 다 읽었어.”

잠시 뒤 딸이 말을 이었습니다.

수진“엄마, 나 오늘 밥 못 먹었는데. 지금 시켜 먹으려고.”

영순 씨는 전화기를 귀에 바짝 붙였습니다.

김영순“그래. 먹고 집에 가.”

그다음 쉬는 날, 수진이 어머니를 찾아왔습니다. 가방에는 받은 편지가 들어 있었습니다. 두 사람은 함께 절에 갔습니다.

수진은 지안 스님에게 고개를 깊이 숙였습니다.

수진“엄마한테 들었어요. 같은 걸 그렇게 여러 번 가르쳐주셨다고요.”

지안 스님“어머니도 여러 번 오셨어요.”

영순 씨가 옆에서 웃었습니다.

김영순“두 번은 빠졌어요.”

지안 스님“그리고 다시 오셨지요.”

수진은 어머니의 공책을 한 장씩 넘겼습니다. 스님이 쓴 글자 아래로 어머니의 글씨가 이어졌습니다. 자기 이름이 여러 장에 걸쳐 있었습니다.

딸은 공책을 덮지 않고 어머니 쪽으로 조금 더 당겼습니다.

수진“엄마, 여기 내 이름 한 번만 써줘.”

영순 씨는 빈칸에 딸의 이름을 썼습니다. 수진은 연필을 잡은 어머니의 손을 가만히 보았습니다. 그리고 손을 놓자마자 그 손을 잡았습니다.

수진“나 이 편지 가게에 두려고. 밥 안 먹고 일하려고 하면 보이게.”

영순 씨가 딸의 손등을 두 번 두드렸습니다.

김영순“손님한테는 자랑하지 마. 글씨도 못 썼는데.”

수진“벌써 했는데.”

스님 앞에서 모녀가 함께 웃었습니다.

다음 수요일

딸이 돌아간 뒤에도 영순 씨는 수요일마다 절에 왔습니다. 아직 혼자 읽지 못하는 글자가 훨씬 많았습니다. 딸이 짧게 적어 보낸 답장도 지안 스님과 함께 읽었습니다.

어느 날은 영순 씨가 공책과 귤 두 개를 찻상에 놓았습니다. 스님 앞으로 한 개를 굴려주고 먼저 공책을 펼쳤습니다.

지안 스님“오늘은 뭘 배우고 싶으세요?”

영순 씨가 딸의 답장 마지막 줄을 가리켰습니다.

엄마, 다음에는 내가 편지할게.

김영순“이거요. 다음 편지는 제가 먼저 읽어보고 싶어요.”

지안 스님이 의자를 당겨 영순 씨 옆에 앉았습니다. 두 사람은 첫 글자부터 천천히 짚었습니다.

차가 식는 동안, 영순 씨의 공책에 새 줄이 하나 늘었습니다.

짧은 인사

이야기, 마음에 드셨나요? 구독으로 함께해 주세요. 여러분의 사연도 댓글로 남겨주세요. 영상으로 만들어드릴게요.